해방 공간 의 아나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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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사, 2008 - 43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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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나오는 단어 및 구문

저자 정보 (2008)

지은이 수민樹民 이문창李文昌은 1927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문을 공부하고 신식 교육을 받은 후, 10대 후반에 아나키즘운동에 투신, 평생을 아나키스트로서 자주학습운동, 문화교양운동, 농촌운동, 자유공동체운동 등 사회운동에 헌신한, 해방 후 한국 사회운동과 아나키즘운동의 산증인이다. 1943년 서울 청파동 광제한약국 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문창은 그후 반탁운동에 가담한 것을 계기로 자유사회건설자연맹 산하의 흑백회에 참여하며 사회운동을 시작하였다. 1947년 초에는 한국혁명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고, 1948년에는 설형회 조직에 참여하여 자주학습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50년 서울이 3개월 동안 북한군 치하에 있는 동안에는 레지스탕스로서 반전 반공산 민중지하운동을 펼쳤다. 또한 부산 피난 중에는 외군부대 노동자의 문화교양운동을 주도하고, 군에 강제 징집되어 가서는 전쟁에 반대하며 당시로서는 유례가 없는 21일간의 단식을 하였으며, 1954년에는 서울에서 환력학원, 근로청소년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47년 발족 당시부터 국민문화연구소(문교부 사회단체 등록 제1호)에 참여한 이문창은 국민문화연구소의 농촌운동, 수산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 등에 헌신하며, 국민문화연구소의 이사(1964~1983년), 부회장(1983~1990년), 회장(1990~2003년)을 지냈다. 국제통신사 외신기자(1956년)와 경제통신사 외신기자(1959년)를 지내기도 한 이문창은 한국자주인연맹대회(1987년) 간사로 피선되고, 세계평화국제회의(1988년) 사회를 보았으며, 광복 50주년 기념 한국자유사회운동 국제학술회의(1995년)를 주재하였다. 1988년 제1회 우관상을 수상한 이문창은 지금도 국민문화연구소 명예회장, 박열의사기념사회 이사, 자유공동체연구회 상임고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2006년부터는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유공동체운동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한일 공동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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